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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오해

오해는 크리스마스 며칠 전 우리 집 문 앞에 놓여 있던 레몬 한 봉지로 시작한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아마존 배달 상자 위에 갓 딴 것 같은 싱싱한 레몬이 한 봉지 놓여 있었다. 잠시 후, 아내와 나는 2년 전 이사 온 옆집 부부가 준 것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우리 집 왼쪽 옆집에는 ‘와니타’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그 집 뒷마당에는 커다란 레몬 나무가 있어 매년 몇 차례 레몬을 얻어먹곤 했었다. 아내는 그 레몬을 썰어 설탕에 재워 놓았다가 레모네이드를 만들기도 하고, 즙을 내어 화장수를 만들어 얼굴에 바르기도 했다. 와니타 할머니와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물도 주고받았다.     2년 전, 할머니는 집을 팔고 타주에 사는 딸네 곁으로 갔고, 그 집에는 중년의 부부가 이사를 왔다. 그동안 오며 가며 인사만 주고받던 이웃이 마침내 레몬을 선물했다고 생각한 우리는 레몬을 주어 고맙다는 카드를 써서 와인 한 병과 함께 문 앞에 놓아두었다.     며칠 후, 마주친 이웃집 남편이 내게 와인을 두고 갔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는 레몬을 준 적은 없지만 와인은 고맙다고 한다. 잠깐 어색한 분위기가 지나가고, 서로 웃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집에 들어와서야, 아, 그 순간 “그럼 앞으로 레몬을 주면 되겠네요”라고 말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을 아내에게 전하니, 그제야 그럼 레몬은 오른쪽 옆집에서 준 모양이라고 한다. 그 집에는 90이 넘은 ‘맥스’ 영감이 혼자 산다. 배우 출신이라는 맥스와는 오랫동안 선물을 주고받아왔는데, 작년부터 선물 주기를 그만두었다. 이유인즉, 차를 처분한 그가 우리 선물에 답례를 하기 위해 집 근처 가게까지 걸어갔다 오는 것을 알고부터다.   다음날, 외식하고 돌아오는 길, 아내가 빵집에 들러 가자고 한다. 맥스에게 빵을 사다 주면 좋아할 것 같다고 한다. 빵을 한 봉지 사 들고 차를 몰아 옆집 드라이브웨이로 들어갔다. 맥스는 귀가 어두워 보청기를 사용하지만 문을 여러 번 두드려야 한다.     한참 만에 나온 그가 빵을 받아 들더니, 활짝 웃으며 좋아한다. 맨발로 내가 앉아 있는 차까지 와서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이 혼자 사는 노인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가끔 빵을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말이면 선물을 나누는 또 다른 이웃은 길 건너 사는 필리핀 사람 ‘프레드’다. 나보다 연상인 그는 아내를 잃고 혼자 살다가 수년 전에 젊은 필리핀 아가씨와 재혼을 하더니 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 그 녀석이 귀여워 크리스마스면 선물을 주기 시작했더니, 그 집에서도 선물을 한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팝콘과 초콜릿을 가져왔다.     연말 선물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며 안 주고 안 받기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선물 주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 각자 취향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부담스럽다면 안 하는 것이 맞고, 즐겁다면 하는 것이 맞다.     이렇게 산타는 어김없이 우리 곁을 다녀갔다. 새 달력을 걸며 벌써 올해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이제 11달 남았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오해 연말 선물 선물 주기 레몬 나무

2024-01-17

[글마당] 레몬 나무 그림자

“너 요즈음도 신문에 글 쓰니?” 나와 전화 통화하던 친구가 물었다.   “글 쓸 소재가 없어서 끙끙대고 있어.”     “너 옛날에 차 타고 가다가 화가 난 네 남편이 너를 길가에 버리고 간 글이 기억에 생생하다.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써라.”     “처음 신문에 글쓰기 시작할 때는 고생했던 기억의 쓴 물이 솟아나서 토해내듯이 썼는데. 다 뱉고 나니 더는 그런 소재가 없어. 나이 들고 먹고살 만하니까 남편과도 싸울 일도 없고. 크루즈 타고 여행한다는 글을 가끔 쓰긴 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인 듯 편치 않고 고민이야.”   나의 넋두리가 길게 이어지는 중, 전화선 너머로 친구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너 지금 산책하니?”   “아니, 뒤뜰로 나왔어. 담배 한 대 피우려고. 옛날 이야기하니까 담배가 땅기네.”   우리의 대화 중 젊은 날의 즐거움과 회한이 그녀를 자극했나 보다. 나는 친구를 닮아 밝게 빛나는 그녀의 집 뒤뜰에 있는 200개의 레몬이 열린다는 나무가 생각났다.   “너 레몬 나무 아래서 담배 피우고 있지? 여기까지 레몬 향을 품은 담배 냄새가 난다.”   대학 다닐 때는 친하지 않았던 LA에 사는 친구다. 학교를 졸업한 그해, 늦가을 나는 직업, 결혼 등을 고민하며 안국동 돌담길을 걷고 있었다. 길 가다가 우연히 나를 본 이 친구가 내 모습이 가련했는지 큰소리로 나를 불러세웠다.   “야 반갑다. 너 어디 가니?”   “그냥, 근처에 왔다가 집에 가는 중이야.” 소심한 나는 활달한 그녀를 약간 경계하며 소리죽여 말했다.   “내 화실이 이 근처야. 이왕 이렇게 만났는데 함께 가서 한잔하자.”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반응에 나는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갔다. 화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정리되지 않은 어두운 화실 안을 살피려고 눈동자를 확장하려는 순간, 훤하게 빛을 발하는 덩치가 큰 잘생긴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나에게 자기 남자 친구라고 소개했다. 어두운 공간에서 두 청춘 남녀 사이에 끼어있자니 무척 불편했다. 조금 있으면 다른 친구들이 들이닥칠 거라며 더 놀다 가라는 그녀의 친절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친구는 화실에서 작업도 하고  잘생긴 애인도 있고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젊음을 한껏 즐긴다’는 것에 더욱 위축된 나는 안국동 돌담길을 걷다가 저녁놀이 뜨고 지고 어스름한 밤이 올 때까지 광화문 정류장에 마냥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잡아 이끌어주길 기다리듯이.   우리는 우연히 같은 해 미국에 왔다. 친구는 그 멀쩡하고 덩치 큰 남자와 결혼하고 LA에 이민을 왔다. 나는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 뉴욕으로 왔다. 그녀와 나는 전화 통화만 하다가 가물에 콩 나듯 LA와 뉴욕을 오가며 만난다. 고민 많던 그 시절, 나에게 손을 먼저 내밀어준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내 기억에 각인되어 나는 그녀와의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듯하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그림자 레몬 레몬 나무 안국동 돌담길 담배 냄새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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